담배를 끊으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서랍은 반쯤 열린 채 걸려 멈췄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어느 저녁 나는 복도에 서서 입에 담배를 문 채, 나를 구해 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을 넣어 두던 낡은 나무 서랍에 한 손을 얹고 있었다. 모서리가 구겨진 패치 상자들. 책등이 망가진 앨런 카의 책. 쑥과 묵은 차 냄새가 나던 허브담배 두 갑. 쾌락을 없애 준다고 했던 알약 포장판. 심지어 시계에 맞춰 담배를 피우던 몇 달 동안 쓰던 낡은 공책까지 있었다.
나는 19살 때부터 담배를 피워 왔다. 그때쯤이면 이미 27년째였다. 아내와 나는 그 습관을 중심으로 어른이 된 뒤의 삶 대부분을 짜 왔지만, 그 사실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서랍은 내가 품었던 좋은 결심들을 모아 둔 개인 박물관이었다. 열 때마다 같은 문장이 나를 눌렀다. 너는 이것도 이미 너무 많이 실패했다.
그 서랍이 정말 담고 있던 것
겉으로 보기엔 실용적이었다. 도구들. 계획들. 진지한 시도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명했다.
안쪽은 종이와 골판지가 감당해야 할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각 물건은 이제는 믿지 않는 내 모습의 한 버전을 품고 있었다. 패치는 언젠가 규율이 마침내 이길 거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던 그 주의 것이었다. 책은 또 하나의 깨달음만 있으면 머릿속 스위치가 딸깍 바뀔 거라고 확신하던 그 주말의 것이었다. 허브담배는 의식은 유지한 채 물질만 바꿔 보려던 기묘한 한 달의 것이었다. 몸이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믿으면서. 공책은 타이머를 쓰던 시기의 것이었다. 한 시간에 한 개비, 그다음엔 90분, 그다음엔 두 시간. 내 휴대폰은 교도관처럼 윙윙거렸다.
이 방법들 가운데 어느 것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 지금은 그걸 안다. 나를 무너뜨린 건 그런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실패할 때마다 그건 증거물처럼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충분히 시도하고 나면 사람은 더 이상 그 방법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원래 이런 걸로는 절대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그 서랍의 진짜 무게였다. 학습된 무기력. 그때는 그 표현을 몰랐지만, 그 감정은 알고 있었다. 나무 서랍을 열기만 해도 나는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패를 쌓아 올리기를 멈춘 밤
변화는 드라마처럼 오지 않았다. 손으로 담배갑을 으깨지도 않았다. 거울 앞에서 연설하지도 않았다. 그런 퍼포먼스를 할 만큼 나는 지쳐 있었다.
기억나는 건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테이블 위에 놓던 순간이다. 패치 상자. 책. 허브담배 팩들. 공책. 라이터 하나가 나무 위를 굴러가다 끝에 부딪혔고, 그 우스꽝스러운 작은 소리가 장면 전체를 더 평범하게 만들었다. 아내는 부엌에 있었다. 아파트 안에는 담배 냄새, 묵은 종이 냄새, 차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그 더미를 바라보다가, 수년 동안 실패한 시도들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쌓아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조용한 무언가가 분명해졌다. 내가 진지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또 다른 영웅적인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금연을, 과거의 모든 시도가 나를 상대로 증언하는 법정으로 바꾸는 일을 멈춰야 했다.
오랫동안 나는 다음 시도가 앞선 모든 시도를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엄격해야 하고, 더 깨끗해야 하고, 더 규율적이어야 하고, 더 단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은 나를 가둬 두었다. 새로 시작할 때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무겁게 느끼게 만들었다.
나중에야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덜어 줄 한 가지를 배웠다. 대부분의 사람은 힘만으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내가 실패한 것은 유난히 약해서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같은 싸움의 다른 버전을 건네받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달라진 것
그날 밤 나는 서랍을 다르게 정리했다.
다음 불안이 올 때를 대비한 비상구처럼 그것들을 더 이상 손 닿는 곳에 두지 않았다. 이미 끝난 장처럼 치워 두었다. 분노해서도 아니고, 의식을 치르듯이도 아니었다. 다만 내 좌절의 증거를 더는 모으지 않겠다고 인정할 만큼만 솔직해졌다.
다음 시도는 마지막 시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내가 더 단단해져서가 아니었다. 더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의지를 시험할 새 난관을 찾지 않았다. 어떤 방법이 결국 나를 억지로 복종시키려 들지 묻는 일도 그만뒀다. 접시처럼 실패를 쌓아 올리며 왜 선반이 흔들리는지 의아해하는 일도 멈췄다.
그 변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 습관은 오랫동안 압박, 두려움, 자기비난 위에서 살아왔다. 한 번 보고 나니, 다시는 그전처럼 볼 수 없었다. 문제는 니코틴만이 아니었다. 금연을 둘러싼 그 지치게 하는 전체 틀, 곧 싸우고, 실패하고, 자책하고, 반복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였다.
지금도 테이블 위에 모든 걸 펼쳐 놓았던 장면이 기억난다. 패치 상자의 구겨진 모서리. 허브담배 팩에서 나던 쑥 냄새. 그토록 큰 희망으로 펼쳤던 책. 그 어떤 것도 나를 화나게 하지 않았다. 그게 놀라웠다. 나는 분노보다 나은 무언가를 느꼈다. 퍼포먼스를 끝냈다는 느낌이었다.
그건 절망과는 다르다. 절망은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끝났다는 감각은 통하지 않는 것을 반복하는 일을 이제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담배를 끊으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면, 그 느낌이 중요하다. 극적인 결심이 아니다. 거창한 마지막 담배도 아니다. 실패한 시도들에 자기 정체성을 매달아 두는 일을 멈추는 조용한 순간이다.
그 밤 나는 내 과거를 판결문처럼 대하는 일을 멈췄다. 서랍은 닫혔다. 그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들렸다.
J. 프리먼의 가이드는 바로 그 지점을 위해 쓰였다. 힘과 죄책감이 덫의 일부가 된 바로 그 순간을 위해서다. 금연을 또 하나의 힘겨루기로 바꾸지 않고도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