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에 맞춰 담배 피우는 방법, 3개월 뒤

7시 정각
시계에 맞춰 담배 피우는 방법의 첫 주는 오전 7시 알람으로 시작됐다.
나는 부엌에 서 있었다. 아직 덜 깬 상태였고, 조리대 위에는 커피가, 재떨이 옆에는 줄이 그어진 노트가 놓여 있었다. 전날 밤 나는 마치 또 하나의 작은 감옥이 아니라 진지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처럼 시간을 적어 두었다: 7:00, 8:00, 9:00, 10:00.
그때 나는 27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19살에 시작했다. 가장 심할 때는 하루에 거의 40개비까지 갔고, 아내와 나는 둘이서 대략 세 갑을 비워도 별일 아닌 듯 지내곤 했다. 나는 뭔가 엄격한 것을 원했다. 깔끔한 것. 마침내 내가 절제할 줄 안다는 걸 증명해 줄 무언가를 원했다.
한 시간에 한 개비만 피우는 방법은 종이 위에서는 그럴듯해 보였다. 극적인 작별도, 담뱃갑을 으깨는 일도 없었다. 그저 시간표와, 그 시간표가 서서히 나를 거기서 빼내 줄 거라는 약속뿐이었다.
이틀 동안 나는 거의 뿌듯했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하루가 정돈되어 보였다. 노트에 적힌 시간을 하나씩 지워 갔다. 이것이 통제라는 게 이런 모습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루가 알람에 맞춰 휘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금방 벌어졌다. 나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우고 싶은지 묻지 않게 됐다. 대신 지금 몇 시인지 묻게 됐다.
회의가 길어지면 나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화면 한쪽 구석의 시계만 바라봤다. 집으로 오는 길에 차가 막혀도, 나는 교통 체증 때문에 초조한 게 아니었다. 6시 때문에 초조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시간도 또 하나의 빈칸이어서, 어떻게든 관리해야 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 방법은 담배를 줄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담배를 하루의 중심에 놓아 버렸다. 내 휴대폰은 더 이상 휴대폰이 아니었다. 습관의 종탑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간격을 90분으로, 그다음엔 2시간으로 늘렸다. 노트에는 더 좋아 보였다. 머릿속에서는 더 나빴다. 담배 사이의 시간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점유된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음 시간 칸을 놓칠 수 없는 예약처럼 품고 다녔다.
내가 가장 싫었던 부분은 바로 그거였다. 알람이 마침내 울리면, 나는 전보다 더 긴장한 채 담뱃불을 붙였다. 담배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 한 시간 반 동안 지켜 온 안도감을 현금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동료들 눈에 내가 또 창가로 사라지는 모습만 보였을 것이다. 집에서는 아내가 테이블 위에 화면이 위로 향한 채, 소리까지 켜 둔 휴대폰과, 그때마다 그쪽으로 튀는 내 눈을 봤을 것이다. 방은 알람보다 더 조용했다.
노트가 나를 드러냈다
어느 날 오후, 딱 3개월쯤 되었을 때, 통화 중 알람을 놓쳤다.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말도 안 될 만큼 화가 나 있었다. 일이 화난 게 아니었다. 놓친 12분이 화가 났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인 채 사무실 창가에 서서 책상을 돌아봤다. 노트는 펼쳐져 있었다. 시간들은 가지런한 열로 적혀 있었다. 대부분의 항목 옆에는 체크 표시가 있었다. 그 페이지는 규율 있어 보였다. 동시에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나는 습관을 관리하는 일까지 떠맡았고, 그걸 진전이라고 불렀다.
그 장면이 오래 남은 건 그 방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작게 만든 게 아니었다. 시계를 더 크게 만든 것이었다. 담배는 여전히 하루를 굴리고 있었다. 다만 비서 하나를 둔 셈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조용히 무언가가 돌아섰다. 오랫동안 나는 습관을 더 집요하게 바라보고, 더 촘촘히 세고, 더 엄격하게 감시하라고 요구하는 방법만 골라 왔다. 그리고 그 긴장이 또 다른 실패로 바뀔 때마다 나 자신을 탓했다. 타이머가 실패한 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담배에 정신적으로 묶어 두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걸 씁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 노트가 내게 쓸모 있는 걸 가르쳐 줬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습관을 계속 주목의 중심에 두는 계획은 자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일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다음 담배를 위해 일하게 된다. 하루 속에서 그 자리를 지켜 주게 된다. 당신은 그 낡은 덫의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된다.
그 3개월에서 내가 얻은 것
나는 아직도 싸구려 알람음을 기억한다. 줄이 그어진 페이지, 사무실 창문, 그 단정한 시간 칸들이 지닌 우스꽝스러울 만큼 진지한 분위기도 기억한다. 나는 구원을 원했다. 내가 만든 것은 감시였다.
그 실패한 타이머 시기가 내게 중요했던 건, 어떤 환상을 끝내 줬기 때문이다. 더 엄격한 시스템 하나만 있으면 마침내 두려움에 떠밀려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게 됐다. 긴장감을 진전으로 혼동하는 일도 멈췄다.
그걸 알아차린 날, 나는 당장 끊지는 못했다. 하지만 습관을 더 정돈된 방식으로 섬기게 만드는 방법들을 더는 추켜세우지 않게 됐다. 그건 진짜 한 걸음이었다. 조용했지만, 진짜였다.
하루를 또 다른 자제력 시험으로 바꾸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면, J. Freeman이 바로 그 지점을 위한 안내서를 썼다. 자기 속도에 맞춰 단계별로 전체 경로를 보여 준다. 가격은 담배 몇 갑 값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