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담배 흔적을 치우니 도움이 됐다

재떨이는 보기보다 무거웠다.
나는 회색빛 아침, 우리가 쓰지 않던 그릇 뒤편에서 그것을 찾았다. 두꺼운 유리. 한쪽이 깨진 모서리 하나. 아무리 헹궈도 바닥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던 갈색 자국. 나는 한 손엔 재떨이를, 다른 손엔 커피를 든 채 부엌에 서 있었고, 몇 초 동안은 마치 남의 아파트에 있어야 할 물건인 것처럼 그것을 바라봤다.
아니었다. 그것은 내 것이었다. 27년 동안 이어진 담배 습관의 것이었다. 겨울의 반쯤 열린 발코니 문. 내 서재로 쓰던 빈방. 이번 한 갑만 끝내고, 이번 주만 버티고, 이 스트레스가 지나기만 하면 그만두겠다고 나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약속하던 그 방. 아내는 18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19살에 시작했다. 가장 심할 때는 하루에 담배를 약 40개비 피웠다. 우리 둘의 습관은, 재떨이 자체가 조용히 한 찬장 안에 놓여 있을 때조차 집 안 모든 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거창한 결정을 내리는 중이 아니었다. 그 점을 나는 가장 또렷하게 기억한다. 극적인 마지막 한 대도 없었다.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하는 연설도 없었다. 쓰레기봉투는 이미 열려 있었다. 빈 병들과 주방 찌꺼기를 아래층으로 가져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떨이를 집어 들고 엄지손가락으로 가장자리의 먼지를 훑은 뒤, 봉투 쪽으로 가져갔다.
그 물건은 여러 번의 헛시도보다 오래 버텼다
나는 금연을 너무 여러 번 시도해서, 평범한 물건들조차 무대 소품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패치 상자들. 라이터들. 오래된 담배갑들. 등이 휜 앨런 카의 책. 쑥과 눅은 차 냄새가 나는 허브 담배. 매번의 시도는, 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얼마나 쉽게 의식을 만들어 내는지,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다시 같은 순환 속에서 눈을 뜨게 되는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재떨이도 그 연출의 일부였다.
그것은 담배가 아직도 집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작은 선언처럼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그것을 숨길 때조차, 저녁이면 다시 꺼내 쓸 것처럼 조심스럽게 숨겼다. 습관이 점잖아 보이게 되는 방식은 그렇다. 더럽게 보이던 것이 실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오랫동안 흡연을 배경 소음처럼 다뤘다. 한 대 피운다. 재를 턴다. 재떨이를 헹군다. 창문을 연다. 노트북 앞으로 돌아간다. 한 시간 뒤 다시 시작한다. 그 의식은 하루에서 약 3시간을 빼앗으면서도 짧은 휴식인 척했다. 그것이 내 안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금연 후의 재떨이를 마치 특별한 작별이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담배에게 한 평생치의 의식을 치렀다.
그 부엌에서 달라진 것
재떨이를 쓰레기봉투에 떨어뜨렸을 때, 그 소리가 나를 놀라게 했다. 두꺼운 유리가 금속 통 뚜껑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렇게 평범한 아침치고는 너무 컸다. 아내가 싱크대 쪽에서 돌아보며 “그거 버리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응”이라고 말하고 봉투를 계속 묶었다.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그 담백함이 중요했다.
오랫동안 나는 금연이 꼭 무대 의상을 입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감일. 맹세. 영웅적인 말투. 그런 것들이 희미해지면, 나는 또 실패했다고 받아들였다. 재떨이는 나에게 더 작고 더 나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진짜 변화라고 해서 반드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봉투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나는 의기양양하지 않았다. 더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도덕적으로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몸이 가벼웠다. 마치 방 안에 기다리고 있던 변명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았다. 그건 동기부여와는 다르다. 동기부여는 확 번졌다가 금방 꺼진다. 이것은 더 조용했다. 흡연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줄어든 방은 매시간 당신에게 덜 요구한다.
위층으로 돌아왔을 때, 재떨이가 있던 자리는 어이없을 만큼 텅 비어 보였다. 탁자 위에 비어 있는 한 칸. 더 깨끗해진 나무의 작은 원 하나. 대단한 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자꾸 그 자리를 바라봤다. 집은 변하지 않았다. 나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된 각본의 한 조각은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지루한 순간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은 한꺼번에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예전의 사람이 리허설하는 일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 아침을, 내가 더 요란하게 했던 약속들보다도 더 잘 기억한다. 커피는 반쯤 식어 있었다. 부엌 창으로 회색빛이 스며들었다. 쓰레기봉투의 매듭이 한 번 풀릴 듯하다가 다시 조여 묶였다. 박수도 없었다. 마지막 대사도 없었다. 그저 한 물건이 내가 그것을 연극으로 만들 틈도 없이 아파트를 떠나고 있었을 뿐이다.
그날 아침에는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대신 정직함을 요구했고, 그것이면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작은 순간들은 습관 전체를 끝내지는 않지만, 습관이 살아오던 방의 분위기를 바꾼다. J. Freeman의 가이드는 그런 조용한 전환을 위해 쓰였고, 차분한 길을 한 걸음씩 안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