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은 기념일에 찾아오지 않았다. 화요일 저녁 식사 뒤였다. 접시는 싱크대에 있었고, 창밖은 어두웠고, 아내는 내 옆에서 잔 하나를 닦고 있었다. 27년 동안 바로 그 짧은 멈춤은 담배의 몫이었다. 나는 식탁을 치우고, 주머니를 만지고, 완전히 결정하기도 전에 발코니 쪽으로 향하곤 했다. 그날 밤 나는 접시를 헹구고 손을 닦은 뒤,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몇 초 뒤에야 나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나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규칙도 없었다. 머릿속의 독백도 없었다. 영웅적인 저항도 없었다. 오래된 단서는 단지 그 뒤에 따라오던 나머지 절차를 끌어오지 못했고, 그 작은 부재는 내가 그동안 애써 이기려 했던 어떤 갈망보다도 더 낯설게 느껴졌다.
습관은 늘 가장 먼저 찾아왔다
나는 19살에 담배를 시작했고, 27년 동안 계속했다. 가장 심할 때는 하루에 대략 40개비를 피웠다. 아내도 담배를 피웠고, 우리 둘은 합쳐서 대략 세 갑을 해치웠고, 그 숫자를 터무니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래된 습관은 그런 식이다. 그것은 선택처럼 보이지 않게 되고, 가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저녁 식사 후는 내가 오래도록 따라온 신호 중 하나였다. 아침 커피도 그랬다. 힘든 통화 뒤 사무실 창가도 그랬다. 차에 타기 전의 짧은 멈춤도 그랬다. 담배는 욕구를 기다리지 않았다. 리듬을 기다렸다. 접시는 싱크대로 들어간다. 의자는 뒤로 밀린다. 손은 주머니를 확인한다. 라이터가 딱 하고 켜진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몸은 마음보다 그 동작을 더 잘 익힌다.
나는 그 동작을 시끄러운 방식으로 끊어 보려 했다. 침술. 최면. 상담. 패치. 앨런 카의 책. 벌 받은 정원 같은 냄새가 나는 허브 담배. 매시간을 협상으로 바꾸는 타이머 방식. 실패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더 세심하게 지켜보게 됐다. 지금 갈망하는 걸까? 무너지고 있는 걸까? 오늘은 충분히 강한 걸까? 나는 금연을 휴일 없는 경비 일처럼 대했다.
그래서 그 저녁의 고요가 오래 남았다. 몸이 대본의 한 줄을 놓쳤고, 나는 그 실수를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새로웠다
아내는 계속 그릇을 닦고 있었다. 주전자는 식으며 한 번 윙 하고 울렸다. 건물 어딘가에서 문 하나가 닫혔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거의 습관처럼 발코니 문 쪽을 바라본 기억이 난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걸 잊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그건 나였다. 내가 잊어버린 거였다.
영원히 잊은 것도 아니고, 마법 같은 영화의 결말처럼 잊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담배가 내 날들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무실 냄새도, 탁자 위의 재떨이도, 스트레스 뒤에도 그리고 지루함 뒤에도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도 담배가 찾아오던 방식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습관을 기억하는 것과 그것에 따르는 것의 차이를 보았다.
몇 년 전 누군가 내게 자유가 어떤 느낌일지 물었다면, 나는 승리를 말했을 것이다. 찌그러진 담뱃갑 위에 서서 가슴을 펴고 턱을 세운 남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뭔가를 증명하는 장면 말이다. 그런데 내가 얻은 것은 훨씬 작았고, 훨씬 유용했다. 나는 그릇을 치우고 장보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녁은 계속 흘러갔다. 담배는 자기 차례를 얻지 못했다. 의식도 없고, 사적인 메달도 없었다. 그저 빠진 한 번의 중단뿐이었다.
그때부터 더 이상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내게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부신 새 정체성이 아니었다. 오래된 명령이 점점 소리를 잃어 가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아들은 이제 22살이다. 그는 내게는 한때 너무나 정상처럼 보였던 작은 흡연 습관들 속에서 자랐다. 살짝 열린 창문. 발코니로 나가는 한 걸음. 운전 전에 잠깐 멈추는 시간. 수십 년 반복된 습관은 집 안에 스스로를 새긴다. 함께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어디서 멈춤이 생길지를 가르친다.
그래서 그 멈춤이 없던 저녁은 말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 달려가 알리지 않았다. 날짜를 적지도 않았다. 그저 마른 손과 깨끗한 접시 건조대 앞에 잠시 서서, 오래된 반사가 자리를 비웠는데도 나쁜 것이 달려와 그 자리를 채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방은 비어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온전했다.
그게 내가 가진 가장 가까운 설명이다. 담배를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극적이지 않았다. 온전한 느낌이었다. 저녁은 그대로 저녁이었다. 부엌은 그대로 부엌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버리는 대신 대화 속에 남아 있었다.
27년이 지나고 나서, 그것은 내가 할 수 있었던 어떤 말보다도 더 큰 변화였다.
이 안내서는 숙제처럼이 아니라, 그런 날들의 조용한 동반자로 둘 때 가장 잘 맞는다. 때로는 한 페이지면 오래된 반사가 제 자리를 잃는 방식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